
서평
『데일리 필로소피』는 하루에 한 편씩 읽도록 구성된 책이다. 짧은 인용과 해설로 이루어져 있어 부담 없이 펼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자주 멈추게 된다. 스토아 철학의 문장들이 특별히 어렵거나 낯설어서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원칙을 실제로 지키고 있는지를 계속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며, 외부의 평가나 감정보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글로 읽으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들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 속에서는 가장 먼저 잊어버리는 것도 이런 원칙들이다. 이해하는 것과 그 순간 그렇게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거리가 있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수용’도 그래서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참고 견디거나 체념하는 태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서의 수용은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출발점에 가깝다. 이미 벌어진 일을 계속 부정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조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편이 낫다. 상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지, 그다음 어떤 행동을 할지는 여전히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특히 자주 돌아보게 된 것은 행동이었다. 좋은 원칙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고 좋은 문장을 많이 저장한다고 해서 그만큼 좋은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실제로 지키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지, 배운 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묻는 편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데일리 필로소피』는 한 번 읽고 내용을 기억하는 책이라기보다,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자신을 점검하는 책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어떤 날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문장이 다른 시기의 나에게는 꽤 오래 남기도 한다. 같은 문장인데도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질문이 되는 경험을 했다.
COMMENT
그것이 바로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충고하는 이유라네. 단지 배우는 데만 만족하지 말고 익히고 훈련하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배운 것을 잊어버리고 정반대의 행동을 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유지하고는 하지.
input과 output이 적절한가 생각하게 된다.
배우고 이해하는 데 쓰는 시간에 비해 실제 삶에서 달라지는 것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당신의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각자 가능한 범위 내에서 목표를 달성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누구도 그런 당신을 막을 수 없다. 어떤 외적 장애물이 있을 수 있지만 정의로움, 자제력, 지혜로움과 함께했다면 장애물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 행동의 어떤 부분을 좌절시키려고 한다면? 그런 경우에는 기꺼이 그 장애물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조건에 주의를 기울여라. 그리고 즉시 삶을 만들어가는 데에 더 도움이 되는 다른 행동을 취하라.
장애물보다 목표에 집중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이유와 장애물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보다, 지금 통제할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하는 편이 낫겠다.
‘인지 왜곡’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우리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장된 사고방식을 뜻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이분법적 사고’로 흔히 ‘모 아니면 도’라고 불리는 인지 장애다.
ㆍ우리 편이 아니라면 적
ㆍ좋은 사람이 아니면 나쁜 사람
ㆍ완벽하지 않으면 완전한 실패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는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모습으로 사람과 상황 전체를 규정해버리는 데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내가 기대한 만큼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실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감정이 앞서는 순간에는 일부의 경험을 전체에 대한 결론으로 확대하기 쉽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사람을 믿을 만한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누거나, 어떤 결과를 성공과 실패로만 판단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안에는 실망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고, 부족했지만 의미가 있었던 결과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성숙한 판단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 있는 수많은 회색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넘어지고 난 후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기억하라.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잔인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일수록 특히 그렇다.
불필요한 말을 내뱉고 나서 주워 담으려 하기보다 애초에 예방하는 편이 낫다.
알고 있는 것과 실제 순간에 참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한 번 멈춰보고 대응해보자.
궁수는 조준하지 않은 과녁을 맞히지 않는다. 이는 어떤 목표가 되었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원칙은 우리가 원하는 목표로 우리를 인도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거기에 도달하느냐 마느냐는 행동이 결정한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라. 그런 다음 다른 것들을 버리고 그것을 향해 행동하라. 소원하고 희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생이 게임의 자동사냥처럼 알아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구별하고 거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난 뒤 무엇을 열심히 했고 왜 거기에 몰두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눈앞에 주어진 것을 처리하며 살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는 느낌만 남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꼭 결과가 있어야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결과가 없더라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에 의도적으로 몰두한 삶은 그렇지 않은 삶과 질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쉬는 것도 내가 지금 필요하다고 판단해 선택한 것이라면, 그 시간 역시 충분히 잘 쓴 시간일 것이다.
타인의 성공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특히나 자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에는 더 힘들다.
효율적으로 빠르게 성공한 사람을 보면 머리가 좋다는 생각이 들고, 지독하게 노력한 사람이 성공하면 정말 고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둘 중 무엇이든 그 사람을 보며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고 싶다.
우리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안에 무엇을 하는 것이 나에게 최선인가?’ 위대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잘해낼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아주 작은 성취가 모여 큰 성취가 된다. 그 모든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보다 훨씬 좋은 질문이라고 느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고 묻는 순간 목적을 찾는 문제에서 벗어나 삶의 방식 자체를 생각하게 된다. 라이프스타일, 커리어, 관계, 마음가짐처럼 여러 주제에 붙여도 생각할 것이 많다.
삶의 목적은 쉽게 정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어느 정도 답할 수 있다.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다면 남는 것은 그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우리에게 든든한 확신을 불러일으켰던 안전한 상황에서도 더는 마음을 열 수 없게 되네. 한때 든든했던 것이 맹목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더는 안전함을 가져다주지 못하지.
안주하다가는 안전하지 못한다.
안전하다는 이유로 멈춰 있는 동안 환경은 계속 변한다. 지금의 편안함과 앞으로도 안전한 것은 같은 말이 아닐 수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가령 첫 월급을 떠올려 보자. 그때는 대단하게 느끼지 않았는가? 부모로부터 처음 독립했을 때의 느낌은 또 어떤가? 세상의 모든 자유가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좀 더 성공할수록 처음 느꼈던 만족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보잘것없는 것에서 느낀 만족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만족의 한계치는 계속해서 늘어만 가고, 욕심의 한계치 또한 계속해서 불어난다.
욕심과 만족의 끝은 어디일까?
만족만 있었다면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더 나은 상황으로 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행복을 다음 성취 뒤로 미루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성장하고 싶은 욕심과 별개로, 성취의 크기에 따라 함께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 않는 자신만의 행복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랑거리가 될 만한 지식을 획득했다면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말을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아니면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을까? 어떤 것이 지식에 대한 내 이해도를 반영하는가?’
지식의 가장 좋은 자랑은 말이 아니라, 그 지식 때문에 달라진 행동일지도 모른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전과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훨씬 분명한 증거다.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맬컴 엑스는 어린 시절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투옥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교육받았으며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흑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그의 투옥은 불운인가, 아니면 긍정적 경험인가?
스토아 철학에서는 사건을 사건 그 자체로만 바라본다. 그것이 불운이 될지 행운이 될지는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스토아의 ‘수용’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향상으로 나아가는 적극적 과정의 첫 단계이다.”
‘오히려 좋아’라는 밈도 사건의 해석을 달리해주는 말인 것 같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오히려 좋아”라고 크게 한 번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미묘하게, 때로는 꽤 크게 비틀린다. 실제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닌데도 그 사건에 붙여놓았던 의미가 잠시 흔들린다.
이 말이 얼렁뚱땅하면서도 즐겁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긍정적인 수용은 원래 꽤 어려운 일인데, 별것 아닌 한마디를 통해 의외로 쉽게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작은 쾌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
철학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삶에서 무엇을 바꾸었느냐를 기대하는 것 같다.
[DAY ONE]☝️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혼자서는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데이원은 모두가 같은 책을 읽는 독서모임이 아닙니다. 각자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날 마음에 남은 한 문장과 자신의 생각을 기록합니다.
덕분에 읽고 끝나는 독서보다 한 문장을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과 새로운 관점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하루의 짧은 기록이 쌓이고, 한 달의 생각을 서평으로 정리하면서 독서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 속 습관으로 만들어갑니다.
혼자서는 자꾸 미루게 되지만, 읽고 기록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면 데이원에서 함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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